
체온계를 입에 물릴 수도 없고,
피를 뽑을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상대는 약 6,600만 년 전에 멸종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입니다.
그런데 2026년 9월, 연구진은 놀라운 숫자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약 36.3℃.
티라노사우루스의 체온이 오늘날 대형 포유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몬태나주 헬크리크층에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이빨 3개의 법랑질을 분석해 평균 **36.3±2.5℃**라는 값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궁금해집니다.
화석은 돌처럼 굳어 있는데,
대체 어떻게 그 안에서 6,600만 년 전 체온을 알아낸 걸까요?
비밀은 이빨 속에 남아 있는 아주 작은 원자들의 결합 흔적에 있었습니다.
🦷 체온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빨’
연구진이 사용한 것은 미국 몬태나주 헬크리크층(Hell Creek Formation)에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이빨입니다.
이 지역의 암석은 백악기 말, 티라노사우루스가 북아메리카를 돌아다니던 시기에 형성됐습니다.
연구진은 두 개체에서 나온 이빨 3개를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빨이었을까요?
우리의 뼈와 마찬가지로 공룡의 이빨도 살아 있을 때 몸속에서 만들어집니다.
특히 바깥쪽의 단단한 법랑질(enamel)은 결정 구조가 매우 단단해 매몰된 뒤에도 주변 환경에 의해 화학적으로 변하기 어렵습니다.
즉,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진 화학적 정보가 수천만 년 뒤까지 비교적 잘 보존될 수 있는 부분인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 법랑질에서 이빨 하나당 약 5mg 정도의 아주 작은 시료만 채취했습니다. 과거보다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귀중한 화석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탄소와 산소가 붙어 있는 방식이 온도를 알려준다
여기서 핵심 기술이 등장합니다.
이름은 뭉침 동위원소 분석(clumped isotope thermometry)입니다.
자연에는 같은 원소라도 질량이 조금씩 다른 동위원소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탄소에는 ¹³C, 산소에는 ¹⁸O처럼 상대적으로 무거운 동위원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탄산염 구조 속에서 이런 무거운 동위원소들이 서로 붙어 있는 정도, 즉 ‘뭉침(clumping)’은 그 물질이 만들어질 당시의 온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쉽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낮은 온도에서는 무거운 동위원소들이 서로 뭉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높은 온도에서는 그 뭉침이 줄어듭니다.
따라서 이빨 법랑질에 남아 있는 탄소와 산소 동위원소의 결합 패턴을 정밀하게 측정하면,
“이 법랑질이 만들어질 당시 몇 도였는가?”
를 거꾸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화석 이빨 안에 작은 화학 온도계가 남아 있었던 셈입니다.
🔬 5mg의 이빨 가루에서 체온을 읽어낸다
실험 과정은 생각보다 정교합니다.
연구진은 먼저 티라노사우루스 이빨의 법랑질에서 극소량의 분말을 채취합니다.
이 시료를 화학 처리해 법랑질에 포함된 탄산염 성분을 이산화탄소(CO₂) 형태로 바꾼 뒤,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탄소와 산소 동위원소가 얼마나 자주 특정 조합으로 붙어 있는지를 측정합니다.
그리고 이미 실험적으로 알려진
‘동위원소 뭉침 정도 ↔ 온도’
관계에 대입합니다.
그 결과 세 개의 티라노사우루스 이빨에서 얻어진 평균값은
**36.3±2.5℃**였습니다.
오늘날 사람의 체온과 상당히 비슷한 숫자입니다.
물론 이것이 티라노사우루스가 항상 정확히 36.3℃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 개의 이빨에서 얻은 추정치의 평균이며 측정 불확실성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숫자 하나보다 주변 환경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따뜻했는가입니다.
🐊 혹시 화석이 땅속에서 데워진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6,600만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화석화 과정에서 화학 조성이 변해서 36℃라는 숫자가 나온 것은 아닐까요?
연구진도 이 문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헬크리크층에서 발견된 비슷한 시대의 악어류 이빨 5개도 같은 방법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악어류의 평균 추정 온도는 약 **30.9℃**였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보다 확실히 낮았습니다.
만약 오랜 시간 동안 주변 암석의 열과 화학작용이 모든 이빨의 원래 정보를 지워버렸다면,
같은 지층에서 나온 티라노사우루스와 악어류의 결과도 비슷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온도 신호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비교가 티라노사우루스 이빨 속 신호가 단순한 화석화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생전의 체온 정보를 상당 부분 보존하고 있다는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 36.3℃라면 티라노사우루스는 ‘온혈동물’이었을까?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문제가 등장합니다.
오랫동안 공룡은 오늘날의 도마뱀이나 악어처럼 주변 온도에 크게 의존하는 변온성 동물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공룡의 성장 속도, 뼈 구조, 깃털, 활동성, 고위도 지역의 화석 등 여러 증거가 쌓이면서 일부 공룡이 높은 대사율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번 결과 역시 그 방향을 강하게 지지합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약 36℃라는 체온은 같은 지층의 악어류보다 높았고, 연구진이 추정한 당시 주변 환경의 온도보다도 높았습니다.
즉 단순히 햇볕을 받아 몸이 따뜻해진 것만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몸속 대사를 통해 상당한 열을 만들어내고 유지했을 가능성과 잘 맞습니다.
오늘날의 새가 공룡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다만 여기서 바로
“티라노사우루스는 인간과 똑같은 방식의 완전한 온혈동물이었다”
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집이 매우 큰 동물은 한 번 얻은 열을 쉽게 잃지 않는 큰 몸 자체의 효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내온성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지만, 세 개의 이빨만으로 티라노사우루스의 모든 체온조절 메커니즘을 완전히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 그래서 추운 알래스카에서도 살 수 있었을까?
체온을 알아내자 연구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이 정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티라노사우루스는 어디까지 살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연구팀은 약 36℃라는 체온과 백악기 말의 고기후 자료를 기후 모델에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적합했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북아메리카 중위도에만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훨씬 추운 고위도 지역까지 잠재적인 서식 범위가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알래스카를 포함한 북쪽 지역에서도 티라노사우루스류의 화석이 발견됩니다.
주변 온도가 떨어져도 비교적 높은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면,
햇볕과 외부 온도에 크게 의존하는 동물보다 활동할 수 있는 지역과 시간이 넓어집니다.
커다란 몸집과 강한 턱뿐만 아니라,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 역시 티라노사우루스가 거대한 포식자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 따뜻한 몸에는 대가도 필요하다
하지만 체온을 높게 유지하는 데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몸속에서 지속적으로 열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현대의 내온동물이 변온동물보다 일반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몸길이 10m가 넘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높은 대사율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그 거대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양의 먹이가 필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Reuters가 전한 연구진 설명에서도 높은 체온은 티라노사우루스의 활동성과 먹이 요구량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제시됩니다.
다만 여기에서도 주의해야 합니다.
36.3℃라는 결과만으로
“티라노사우루스는 얼마나 빨리 달렸다”
또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사냥했다”
까지 직접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체온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생리를 이해하는 하나의 강력한 퍼즐 조각이지, 행동 전체를 설명하는 답안지는 아닙니다.
🧪 그렇다면 모든 공룡의 체온도 알 수 있을까?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체온 숫자 하나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방법입니다.
연구팀이 분석법을 개선하면서 이제 몇 mg 수준의 법랑질만으로도 화석 동물의 체온을 추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물관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희귀한 공룡 화석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야 한다면 연구를 허용하기 어렵지만,
채취해야 하는 양이 크게 줄어들면 더 많은 화석을 분석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UCLA는 이 분석에 필요한 화석 시료의 양이 기존보다 약 90% 줄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다른 공룡의 이빨에도 같은 방법을 적용한다면,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은 체온이 달랐는지,
작은 공룡과 거대한 공룡은 달랐는지,
공룡의 체온조절 능력이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6,600만 년 전 생물의 몸속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남긴 원자의 배열을 읽음으로써 생전의 생리까지 복원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 그래도 ‘티라노사우루스 체온 = 정확히 36.3℃’는 아니다
과학에서는 숫자만큼이나 그 숫자가 어디에서 나왔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번 연구에서 분석한 티라노사우루스 이빨은 3개, 개체로는 2마리입니다.
따라서 36.3℃를 모든 티라노사우루스가 언제나 유지했던 정확한 체온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계절과 나이, 개체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이빨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기록된 온도가 하루 24시간의 체온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결과만으로 모든 공룡이 같은 방식으로 체온을 조절했다고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연구의 가장 정확한 의미는,
분석된 티라노사우루스 개체들이 주변 환경이나 같은 지역의 악어류보다 상당히 높은 체온을 유지했다는 직접적인 화학적 증거가 발견됐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 왜그럴LAB 한 줄 정리
과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체온계를 꽂은 것이 아닙니다. 이빨 법랑질이 만들어질 때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¹³C와 ¹⁸O의 ‘뭉침’ 정도를 분석해, 6,600만 년 뒤 약 36.3℃라는 체온의 흔적을 다시 읽어낸 것입니다.
공룡에게서 남은 것은 뼈와 이빨뿐인 것 같지만,
그 작은 화석 속에는
“살아 있을 때 얼마나 따뜻했는가”라는 정보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 참고자료
- Flores, R. J. et al., The body temperature of Tyrannosaurus rex, Science Advances, 2026.09.16.
- UCLA, Scientists finally know the body temperature of the Tyrannosaurus rex, 2026.09.16.
- Reuters, Tooth study shows T. rex was warmblooded, with human-like temperature, 2026.09.16.
- AP, The T. rex had a body temperature similar to our own, study finds, 2026.09.17.
- 연합뉴스, ‘공룡의 왕’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체온 포유류와 비슷했다, 2026.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