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여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이상한 물건들이 걸려 올라왔습니다.
물고기가 아니라 도자기 6점이었습니다.
그중 한 점이 신고됐고,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도자기는 최근에 바다에 빠진 물건이 아니라 중국 원나라 시대의 청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도자기 몇 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14세기 동아시아를 오가던 거대한 무역선 한 척이었습니다.
이것이 한국 수중고고학의 시작을 알린 신안선입니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진 발굴에서는 약 2만4000점의 유물과 무려 28톤에 달하는 동전 등이 인양됐습니다.
그리고 2026년은 신안선 수중발굴이 시작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이를 기념해 9월 14일부터 한국 수중발굴 50주년 행사를 열고, 신안선에서 발견된 자단목을 중심으로 약 370점의 유물을 공개하는 특별전도 개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깁니다.
나무로 만든 배가 바닷속에 가라앉았다면 썩어 없어져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수백 년 뒤까지 남아 있었을까요?
🚢 신안선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던 배였을까?
신안선은 약 700년 전 동아시아 국제무역의 한복판을 항해하던 배였습니다.
1323년경 중국 원나라의 국제무역항이었던 경원, 지금의 닝보 일대에서 출항해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 안에는 엄청난 양의 상품이 실려 있었습니다.
중국 도자기와 동전뿐 아니라 금속제품, 향신료와 약재, 자단목 등 다양한 물품이 발견됐습니다.
특히 이번 수중발굴 50주년 특별전의 주인공인 자단목은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에서 생산되는 단단한 고급 목재입니다.
연구자들은 자단목에 남은 문자와 표식까지 분석해 인도 → 중국 → 일본으로 연결됐던 14세기 해상 교역망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즉 신안선은 단순한 ‘보물선’이 아닙니다.
700년 전 동아시아 사람들이 무엇을 사고팔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타임캡슐입니다.
🌊 그런데 왜 하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됐을까?
일본을 향해 항해하던 신안선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침몰 원인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배는 신안군 증도 인근 해역에 가라앉았고, 이후 오랜 시간 바닷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혔습니다.
약 650년 뒤인 1975년.
그 위에서 조업하던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렸습니다.
이 작은 우연이 거대한 발굴로 이어졌습니다.
본격적인 수중발굴은 1976년 시작됐고 이후 1984년까지 계속됐습니다. 한국의 수중문화유산 발굴 역사가 사실상 이곳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 나무배가 어떻게 수백 년 동안 남았을까?
여기서 이 이야기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나옵니다.
흔히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바닷속이라 공기가 없으니까 안 썩은 거 아닐까?”
절반 정도만 맞습니다.
바닷물 속에도 산소가 존재하고, 목재를 공격하는 미생물과 해양생물도 있습니다.
따라서 나무를 그냥 바닷물에 넣어둔다고 수백 년 동안 멀쩡하게 보존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배가 해저 퇴적물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 나무를 썩게 만드는 데에도 산소가 필요하다
나무가 썩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 저절로 사라지는 현상이 아닙니다.
미생물과 생물들이 목재의 성분을 분해하면서 구조가 무너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배가 진흙과 모래 같은 퇴적층 아래에 깊숙이 묻히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물의 순환이 제한되고 산소 공급이 크게 줄어들면서 산소가 매우 적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목재를 분해하는 생물과 여러 미생물의 활동도 제한됩니다.
결국 분해 속도가 크게 느려집니다.
바다가 배를 보존한 것이 아니라,
바다 밑 퇴적층이 배를 외부 환경에서 격리한 셈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 앞에서 만든 ② 「신안선은 왜 700년 동안 남아 있었을까?」 이미지를 넣으면 좋아.
🏺 도자기는 왜 그렇게 많이 살아남았을까?
신안선에서 특히 엄청난 양으로 발견된 것이 도자기입니다.
도자기는 나무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이미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 만들어진 무기질 재료라서 목재처럼 미생물이 먹어서 분해시키기 어렵습니다.
물론 파도나 충격으로 깨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침몰한 뒤 퇴적물에 안정적으로 묻힌다면 오히려 외부의 물리적 충격에서 보호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처음 발견된 원나라 청자 역시 수백 년 동안 갯벌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했습니다.
그래서 해저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육지에서는 전쟁, 화재, 개발과 사람의 손을 거치며 사라졌을 물건들이 오히려 바닷속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발견한 배를 그냥 끌어올리면 될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수백 년 동안 물속에 있던 목재를 발견했다고 해서 바로 꺼내 말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물에 잠긴 목재는 내부 구조에 물이 깊숙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육상으로 꺼내 건조시키면 물이 빠져나가면서 목재가 수축하거나 뒤틀리고 갈라질 수 있습니다.
즉,
바닷속에서는 700년을 버틴 유물이
발굴한 뒤 몇 달 만에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중고고학에서 발굴은 끝이 아니라 보존처리의 시작입니다.
실제로 국내 수중문화재 역시 인양된 뒤 오랜 기간 보존·복원 과정을 거쳐 전시됩니다.
🤿 수중고고학자는 바닷속에서 어떻게 발굴할까?
육지의 고고학자는 땅을 조금씩 파면서 유물이 나온 위치와 지층을 기록합니다.
수중고고학자도 기본 원리는 같습니다.
단지 작업장이 바닷속일 뿐입니다.
먼저 탐사를 통해 유물이 집중된 장소와 매몰 상태를 확인하고, 발굴 구역을 설정한 뒤 퇴적물을 제거하면서 유물의 위치와 상태를 기록합니다.
한국에서도 신안선 이후 여러 해저유적에서 이런 방식의 조사가 이어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물만 꺼내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발견됐는지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위치 자체가 역사적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 28톤의 동전은 무엇을 알려줄까?
신안선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특히 압도적인 것은 동전입니다.
발굴된 동전의 무게만 약 28톤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옛날 동전이 엄청 많았다.”
가 아닙니다.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진 물건인지, 어떤 시대의 물건인지, 누구를 위한 화물이었는지 등을 다른 유물과 함께 분석하면 당시의 교역 구조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자단목에 남아 있는 문자와 문양까지 연구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배 한 척 안에는 당시 동아시아를 오갔던 사람·상품·돈·문화의 이동 흔적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신안선이 중요한 이유
신안선의 가치는 ‘비싼 보물이 많이 발견됐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역사책에는 왕과 전쟁, 국가 간 외교가 주로 기록됩니다.
하지만 난파선에서는 전혀 다른 역사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어떤 그릇을 사용했는지, 무엇을 사고팔았는지, 어떤 물건을 좋아했는지, 중국과 일본 그리고 고려가 포함된 동아시아가 얼마나 활발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실제 물건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국가유산청 역시 올해 신안선의 자단목 연구를 통해 14세기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물류 체계와 여러 교역 주체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파선은 종종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닷속에 멈춰버린 어느 하루의 기록.
배가 침몰하는 순간 화물도 함께 멈췄고,
그 상태가 수백 년 뒤 우리에게 발견된 것입니다.
📚 참고자료
- 국가유산청·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한국 수중발굴 50년, 역사의 물살을 넘어 미래의 물결로」, 2026.09.07.
-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국립중앙박물관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展」.
- 문화재청, 『2011 문화재연감』, 해양문화유산 조사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