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유럽의 유명 관광지는 늘 매력적입니다.
베네치아의 운하, 바르셀로나의 골목, 로마의 유적….
관광객이 많아지면 호텔과 식당이 붐비고, 지역에 돈이 들어오며 일자리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관광객을 더 끌어모아야 할 것 같은 도시들이 오히려 관광객에게 돈을 받고, 숙박시설을 제한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시위까지 하기 시작한 겁니다.
관광객이 많으면 지역경제에 좋은 것 아닌가?
대체 언제부터 관광객이 ‘너무 많아진’ 걸까요?
✈️ 관광객은 원래 도시에게 좋은 존재다
관광은 도시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산업입니다.
여행객이 오면 숙박하고, 밥을 먹고, 쇼핑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합니다.
그 과정에서 호텔·식당·상점뿐 아니라 운송업, 문화시설 등 다양한 곳에 돈이 흘러갑니다.
관광객이 증가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세금 수입도 늘어날 수 있죠.
특히 아름다운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가진 지역은 거대한 공장을 짓지 않고도 지역 자체를 하나의 경제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관광객이 계속 늘어나면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너무 많은 관광객, ‘오버투어리즘’
여행객이 몰린 베네치아나 바르셀로나의 사진을 보면 사람으로 길이 가득 찬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 관광객이 지나치게 집중돼 주민의 삶과 관광 경험, 환경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현상을 흔히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이라고 부릅니다.
핵심은 단순히 “관광객 숫자가 많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보다 관광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
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오버투어리즘의 영향은 의외로 관광지의 혼잡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 관광객이 늘었는데 왜 주민의 집값이 문제가 될까?
여기서 최근 유럽이 특히 민감하게 바라보는 문제가 단기임대(short-term rental)입니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서는 집을 장기 거주자에게 빌려주는 대신 여행객에게 며칠씩 빌려주는 것이 집주인에게 더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주택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관광객 증가
↓
단기 숙박 수요 증가
↓
주택의 관광숙박 전환
↓
장기임대 주택 공급 감소 가능성
↓
주민의 주거 부담 증가
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현재 주택난이 심각한 관광지역에서 단기임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9월 4일 공개된 초안에는 주택가격과 소득, 인구 증가, 주택 수급 등을 토대로 ‘주거 스트레스(housing stress)’ 지역을 판단하고 단기임대 수를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바르셀로나는 한발 더 나아가 2028년까지 관광객용 단기임대 주택을 없애겠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이 관광객 하나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주택 공급 부족, 인구 이동, 금리와 건설비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단기임대 업계에서도 관광숙박이 주택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데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관광객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관광객이 사용할 공간’과 ‘주민이 살아갈 공간’이 경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변화입니다.
🚮 집값만 문제가 아니다
관광객 한 명이 도시를 방문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물을 사용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며 도로를 이용합니다.
한두 명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좁은 구도심에 매일 수만 명이 몰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교통 혼잡과 소음이 증가하고 쓰레기 처리와 치안, 공공시설 관리에도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상권까지 관광객 중심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동네 주민을 위한 세탁소나 식료품점 대신 기념품점, 관광객용 음식점, 숙박업소가 들어서기 시작하는 식입니다.
도시는 경제적으로는 관광으로 돈을 벌면서도 동시에 ‘주민이 실제로 살아가는 도시’로서의 기능을 잃을 위험을 안게 됩니다.
앞에서 만든 ② 오버투어리즘 설명 이미지를 이 부분 뒤에 넣으면 흐름이 가장 자연스러워.
🇮🇹 베네치아는 결국 ‘도시 입장료’까지 받았다
오버투어리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도시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입니다.
베네치아시는 2026년에도 특정 날짜에 역사도심을 방문하는 당일치기 관광객을 대상으로 Access Fee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미리 신청하면 €5, 방문일에 가까워져 신청하면 €10을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관광세와 목적이 조금 다르다는 점입니다.
베네치아시는 이 제도의 목적 중 하나를 관광객 흐름을 더 잘 관리하고 계획되지 않은 당일치기 방문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오지 마세요.”
보다는
“모두 같은 날 몰려오지는 마세요.”
에 가까운 정책인 셈입니다.
다만 현재 베네치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한 가지 알아둘 점이 있습니다.
2026년 입장료 적용 기간은 7월 26일 종료됐고, 7월 27일부터는 현재 입장료를 내지 않고 방문할 수 있습니다. 2027년 이후 제도 적용 여부는 아직 베네치아시의 추가 결정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 로마에서는 이제 ‘관광용 골프카트’까지 문제다
관광객이 많아지면 생각지도 못한 문제도 생깁니다.
로마에서는 최근 관광객을 태우고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골프카트 투어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AP에 따르면 현재 약 500대가 운영되고 있으며 예약은 2024년 이후 147%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좁고 오래된 로마 구도심에서 골프카트까지 늘어나자 불법주차와 교통혼잡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결국 로마시는 골프카트의 운행 대수와 이동 경로 등을 제한하는 규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관광객 자체를 막는다기보다,
관광객 증가로 도시가 감당해야 하는 부수적인 활동까지 관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런데 관광객을 줄이면 상인들은 손해 아닌가?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관광객을 줄이면 주민의 생활환경은 좋아질 수 있지만,
호텔, 식당, 여행사, 기념품점, 운송업체처럼 관광객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수입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단기임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민에게는 집을 구하기 쉬워지는 정책일 수 있지만, 자신의 집을 여행객에게 빌려 소득을 얻던 집주인에게는 손실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EU의 단기임대 규제 움직임에 대해서도 관련 업계에서는 지나친 규제가 주택 소유자의 소득과 관광산업을 해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버투어리즘의 핵심 문제는 사실
관광이 좋은가, 나쁜가
가 아닙니다.
관광으로 생기는 이익은 누가 가져가고,
관광으로 생기는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라는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관광객이 소비한 돈이 지역 주민에게 충분히 돌아간다면 관광에 대한 인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제적 이익은 일부 사업자에게 집중되는 반면 집값·소음·혼잡 같은 비용은 주민 전체가 부담한다면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다면 관광객을 아예 줄이는 게 답일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최근 관광정책에서 중요한 질문은 “관광객을 얼마나 많이 받을 것인가?”에서
“관광객을 어떻게 분산하고 관리할 것인가?”
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성수기 대신 비수기 여행을 유도하거나, 특정 관광지에 집중된 방문객을 주변 지역으로 분산하고, 단기임대를 관리하거나, 당일치기 방문과 장기 체류를 다르게 취급하는 방식 등이 가능합니다.
베네치아의 입장료 실험도 이런 흐름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관광객 숫자를 무조건 늘리는 것이 항상 도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 왜그럴LAB 한 줄 정리
관광객이 많아지면 분명 지역에 돈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관광객 증가 → 지역경제 활성화
→ 숙박·교통·공간 수요 급증
→ 주거비·혼잡·쓰레기·소음 등 주민 부담 증가
→ 관광객과 주민 사이의 갈등
→ 관광세·단기임대 제한·방문객 관리
라는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 도시들이 관광객을 막기 시작한 이유는 관광이 싫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관광객을 계속 늘리는 것보다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관광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보는 아름다운 풍경은 누군가에게는 휴가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일 살아가는 집이기도 합니다.
📚 참고자료
- EU 단기임대 규제안 관련 Reuters 보도
- AP — Rome mounts a crackdown on golf carts that are increasingly popular with tourists
- 베네치아시 Access Fee 공식 안내
- 베네치아시 Access Fee FAQ
- Financial Times — EU tourism hotspots and short-term rental restrictions